기녀의 운명2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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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들은 영기, 가기, 사기를 막론하고 대다수가 비참한 삶을 살았다. 어떠한 기녀들은 부유한
탕자의 첩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버림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푸르고  푸른 방죽의 끝]이라는
시는 버림받은 창가 출신 여자의 한을 노래하고있다.

  방죽의 풀은 푸르디 푸르고
  정원의 버들은 울창하기 그지없네
  젊고 젊은 2층의 여자
  창으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내비치네
  붉게 화장한 두 뺨이 아름다운데
  앞으로 내민 흰 손은 가냘프다
  에전에는 창가의 가희였건만
  이제는 탕자의 아내가 되었네
  지아비는 떠난 후 돌아오지 않으니
  빈 침상에서 홀로 지새우기 어렵다
 
 이 시는 고시로서 봄날에 남자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고 있다. 그러니 이부인,  조비연 등과
같은 극소수의 아름다운 기녀들은 귀속  계층으로 진입하여 부귀 영화를 누렸다.  기녀들의 신분
상승 조건은 우선 미모로 황제나 대관,  귀족들의 총애를 받아야 하고, 둘째는  수완을 발휘하여
환심을 사야 하며, 셋째는 아들이 있어야 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없으면 불가능했다. 이
부인은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하여 한무제에게 "저는 아름다운 용모때문에 미천한 신분임에도 황상
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로 사람을 섬기는 자는 그 미색이 쇠하면 애정이 줄어
들고, 애정이 줄면 은혜가 끊기게 됩니다"라고 했다.
  진나라 때 한단의 희(진시황의 어머니), 조위의 변황후(조비의 어머니) 등은 아들이 황제가 되
었기 때문에 끝까지 지위가 유지됐다. 그러나 조비연의 경우는 성제에 의해  황후가 되었지만 아
들이 없어, 평제 즉위후에는 다시 서인이 되어, 최후에는 자살을 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양한 시대부터 중국으로 들어온 불교는 남북조에 이르러
크게 발전했다. 불교의 절은 산속에 있으며, 많은 수의 남자를 중으로 만르었을  뿐만 아니라 여
자들도 비구니로 만들었다. 그때는 또 도교가 발전하여 여자들이 여자 도사가 되기도 했다. 비구
니 혹은 여자 도사가 되면 어느 정도의 생활은 보장되었다. 때문에 이것은 기녀들의 귀착점이 되
기도 하였다. 기녀가 비구니가 되고 여자 도사가 되었다고 하여 생활  보장이 완전하게 이루어지
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당시 비구니는 종교적인 가무 활동을 거행하여 신과 인간을 즐겁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에서는 기녀의 장점을 발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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