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사랑하라_by 성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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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신문에 실린 재혼여성의 글을 보다 공감한 대목이 있다.
꽤 많이 알려진 공인인 그녀가 재혼을 하면서 좋은 결혼을 이루기 위해, 부부가 함께 여러 번 상담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배운 것이 ‘사랑은 작정하고 해야 한다’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역시  부부교육을 할 때 꼭  ‘결혼은 작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도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을 당부하곤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사랑을 작정하고 하겠느냐고? 의도적인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고?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저 빠져들고 생겨나는 것이지, 억지로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사랑하는 것이 무슨 진정한 사랑이겠냐고...?
하지만 좀 더 나누어 이야기하면 빠져드는 사랑은 사랑의 초기 모습이며, 뜨거움을 가진 열정이지, 성숙한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으나, 그 열정이 가진 순수한 뜨거움이 사라지면 또 아주 쉽게 사랑이 식었다고 한탄하고 만다. 그리고 결혼을 했을 경우라면 특히 이혼을 인생의 실패라고 받아들이는 우리나라 같은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그저 동거인으로 살아 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심지어 오픈메리지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오픈메리지란 말글대로 개방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같이 부부라는 법적인 지위를 유지하지만 상대의 정서적, 성적인 교감을 간섭하지 않는, 그래서 밖에서 다른 사람과 해결해도 상관하지 않는 결혼의 형태이다, 일견 쿨해 보이지만 오픈메리지가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상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
그런데 오픈메리지는 그야말로 진정한 결혼의 죽음이다. 상대와 어떤 정서적인, 성적인 교감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함께 사는 인생에 대한 어떤 동반의식도 없이 그저 법으로 제도로 부부로 묶여 각자의 인생을 낭비하는 의미 이상이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사람이 사회적인 제도 안에서 사는 사회적인 존재라고 해도 말이다.

실제로 이러한 결혼형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자녀의 미래라든지, 스스로 사회적인 인식에 침잠하지 않기 위해라든지...)사회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부부로 행세하고 그 사회적인 역할을 하지만, 부부간의 섹스나 어떤 감정의 교감도 없는, 그저 동행일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동행의 역할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치부하기엔 인생은 너무나 귀하고 짧다. 그리고 좀더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자신을 돌보면서..사랑으로 위안 받으면서...
열정이 식고 나면 그래서 그사람의 결점과 문제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정신차려 그 사람을 ‘작정하고’ 사랑해야 한다.
‘난 그를 사랑한다’라고 작정하고 나면 못봐 줄 일이 별로 없다. 그가 좀 게으르다고 해도, 그가 좀 무심하다 해도, 못봐 줄 일은 아니다. 적어도 쉽게 끝내고자 하는 마음은 갖지 않는다. 물론 무엇보다 더 좋은 일은 그냥 봐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금씩 변하고 맞춰 가는 것이다.
함께 맞춰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누누이 말하지만 실제 함께 맞추기 보단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맞추고 그래서  그 한쪽은 억울해 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의 그런 반응을 보면서 멀뚱거리는 경우가 대개이다. 그는 전혀 상대의 맞춰주는 노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와 맞추어 가는 것은 상대가 알아차리도록, 보이게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가 정 모르면, 내가 이렇게 애쓰고 있노라고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작정이다.
결혼은 누구 한사람의 혹은 두 사람 모두의 일방적인 ‘자기 던짐’이 되어서는 안된다.
‘희생’이 아니라  ‘기꺼운 헌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사랑해서 결혼을 선택했고, 사랑이란 서로를 유익하게 하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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